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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30 아이의 발견
이런저런2007. 4. 30. 13:08
똑바로 앉아 밥을 먹는 아이나 책상에 책을 펼쳐놓고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는 아이를 보면 착하고 기특하게 느껴진다. 바르게 크고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짓기도 한다. 반대로 아이가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밥을 먹거나 뒤죽박죽 어지럽히며 책을 읽으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이가 그러지 못하도록 한다. 아이는 입을 삐쭉거리며 자리에 앉지만 이내 몸을 뒤틀 거린다. 아이가 왜 뛰어다니며 밥을 먹으려 했을까. TV에서 재미난 만화영화가 나오는데 식탁은 저 멀리 TV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건 아닐까? 어른들도 관심 있는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겨 다니며 밥을 먹는다. 아예 식탁 위의 음식들을 상에 차려 TV 앞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관심과 흥미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른과 아이의 행동이 다르지 않다. 어쩌면 어른은 어른이라는 것으로 아이보다 더 철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아이가 있다면 장난감도 있다. 그리고 장난감 바구니도 있다. 바구니에 한가득 쌓인 장난감을 꺼내주며 아이가 가지고 놀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는 흥미를 갖지 않는다. 장난감을 선택한 주체가 아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걸 주기 위해 장난감 바구니를 뒤엎어 찾아보지만 아이는 외면한다. 물론 흔들거나 소리를 내어 관심을 끌 순 있겠지만 아이가 능동적으로 수많은 장난감 중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순 없다. 어른들 입장에선 장난감을 한 곳에 담아 두어야 집안이 깨끗하고 정리하기도 쉽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보다 큰 바구니 안에 담겨 손도 닿지 않는 장난감을 스스로 만져 볼 수 없다. 어른이 꺼내 줘여만 하는 수동적인 행태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위한 장난감이 어른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갖고 노는 주체는 아이이지만 주체로 서의 능동적 선택권은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몬테소리는 어른이 아이의 자생력을 헤쳐서는 안되며 어른이 원하는 행동을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어른의 역할은 아이가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 아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대신하려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아이는 엄마의 젖을 떼는 순간부터 다양한 음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어른은 아이가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 또한 장난감을 바구니에 담아 두기 보다는 언제든지 아이가 만지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의 눈높이에 펼쳐 두어야 한다. 담아 둔다는 것은 아이의 능동 선택 행동에 방해 요소가 된다. 더불어 아이는 장난감을 입에 넣길 좋아 한다. 입에 넣어도 될 장난감을 주어 원한다면 충분히 입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이를 위한 장난감은 많지 않아도 된다.  대신 질감, 색깔, 크기, 모양 등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장난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난감은 아이에게 오감을 충족시켜 주고 사물의 차이를 알게 해준다. 모양, 색깔은 같지만 크기가 조금씩 다른 장난감 중에 먼저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을 준다.  이는 아이에게 극명한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 후 조금씩 차이를 좁혀 가며 장난감을 준다. 아이는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질감, 색깔, 모양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어른은 아이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여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 한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것과 어른이 판단한 것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은 크다. 그러므로 아이가 능동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눈높이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달아난다고 아이에게 꾸짖기 보다는 문지방을 없애 아이가 맘껏 뛰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Posted by 우티 o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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